KEPI(The Korea Eurasian Policy Institute)
aims to contribute to common
interest, peace, and prosperity in the Eurasian space
through knowledge sharing, talent donation, and policy suggestions

논평/워킹페이퍼

이대식.아프가니스탄의 미래

미군의 철수 이후 순식간에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요구는 현재로서는 단 하나로 압축됩니다. “포용적 정부를 수립하라.”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 중국 등 주변국 뿐만 아니라 미국 나아가 유엔에서도 탈레반 정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첫번째 전제조건으로 포용적 정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변국과 국제사회가 이렇게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이를 통해서만 테러리즘과 난민의 홍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 약 4000만의 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 국가인데요. 탈레반을 구성하고 있는 파슈툰이 42%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타지크 27%, 하자라 9%, 우즈베크 9% 외 다수의 소수민족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탈레반의 파슈툰족이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고 있는 반면 타지크인와 우즈베크인들은 같은 수니파이지만 원리주의를 멀리하고 있으며 하자라인들은 수니파와 상극인 시아파이지요.

 

탈레반이 인구의 절반을 넘는 소수민족을 포용하지 못할 경우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내전으로 치닫고 탈레반의 이슬람 극단주의는 더욱 심화될 수 있습니다. 이 와중에 테러리스트 그룹은 마음껏 활개칠 수 있게 될 것인데요. 난민이 다시 줄을 잇게 될 것이고 주변국들에게는 난민 수용에 대한 부담에 더해, 그 난민 사이로 잠입해 오는 테러리스트들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변국이 난민을 거절하기 힘들다는 것인데요. 바로 그들 대부분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와 영국이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이른바 그레이트게임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들의 편의대로 국경선을 그은 결과인데요. 북쪽으로는 타지크 거주지역을, 남쪽으로는 파슈툰 거주지역을, 그리고 서쪽으로는 이란계인 하자라 거주지역을 임의로 반토막 내어 버렸지요. 이렇게 해서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에는 타지크인들인이 타지키스탄과, 남쪽에는 파슈툰족들이 파키스탄과, 서쪽에는 하자라족이 이란과 국경을 넘는 밀애 아닌 밀애를 나누고 있는 상황입니다.

 

탈레반의 정권 장악 이후에도 타지키스탄과 가까운 북부 판지시르 계곡 지역에서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RF)이 탈레반에 끝까지 저항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주로 타지크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실제로 타지키스탄 정부가 헬리콥터를 통해 이들에게 물자를 지원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타지키스탄 남부 지역에서는 1800명의 타지크인들이 판지시르의 저항군을 돕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게 해 달라고 대통령에게 탄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란계 시아파인 하자라족에 대한 이란의 입장은 난민 수용 인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데요. 유엔난민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만 이란이 수용한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78만 명으로 수용국 중 2위에 해당합니다. 1위는 파키스탄으로 무려 145만명에 이르지요. 만약 내전이 다시 발발한다면 난민의 숫자는 급증할 것이고 이것은 이란, 파키스탄, 타지키스탄에 엄청난 경제적 부담과 함께 정치적 불안을 가져올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의 내전에 참여한 형제들에 대한 지원도 거절하길 힘들 것입니다. 사실상 내전이 국제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적지 않지요.

 

유감스럽게도 탈레반이 포용적 정부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9 7일 발표한 임시 내각에서 여성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도 찾아볼 수 없었지요. 내각 구성에 포함시킬 경우 저항을 멈추겠다는 판지시르 계곡의 타지크인들의 협상안에 대대적인 진압작전으로 응수했습니다. 19988월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던 탈레반에 의해 단 며칠 사이에 8000명이 학살당했던 하자르족도 예외가 아닌데요. AP통신에 따르면 미군 철수 뒤 탈레반이 카불로 오는 길에 하자라족의 마을 여러 곳을 불 태웠고 한밤중에 민간인을 습격한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소수민족과 여성은 전쟁에만 익숙한 탈레반이 경제를 회복하고 정상적인 국가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전문가와 관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인데요. 이들을 배제하고 탄압할 경우 탈레반 정부는 제대로 된 국정 운영도 국제 사회의 인정과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포용적 정부 없이 탈레반의 미래도 없는 것이죠.

 

탈레반이 정상국가를 만드는데 실패하고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어두운 미래가 닥칠 경우 국제사회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무엇보다 한때는 소련을 저지한다는 구실로 사실상 탈레반을 육성했고 지금은 아프가니스탄을 무책임하게 넘기고 떠난 미국은 어떻게 할까요? 국경선을 강제로 만들고 10년간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키고 쫓겨난 러시아는 어떻게 할까요?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다시는 제국의 수렁에 빠질 생각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은 이 수렁에서 빠져나온 뒤 이번에는 반미연대전선을 형성한 러시아, 이란, 중국이 이 수렁에 엉키기를 기대할 것인데요. 한국 외대의 홍완석 교수는 이를 차도살인전략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3국은 아마도 이 차도살인 전략에 최대한 휘말리지 않기 위해 간접적인 지원 이상의 선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러시아는 집단안보조약으로 자국과 묶여진 타지키스탄을 통한 대리전으로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텐데요. 6월 미러 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이 제안한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 미군 기지 제안을 푸틴이 일단 거절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그러나 상황이 심각해지고 러시아의 부담이 커질 경우 미국의 제안을 받아드릴 여지도 있습니다. 시리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북극까지 군사력 투사를 확대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아프가니스탄까지는 매우 부담스러울 수 있고 또 자신의 뒷마당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마냥 높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것은 바로 이것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궁극적인 이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러 공조를 깨고 대중 봉쇄를 강화하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것. 이를 위해서 이제는 필요 없어진 아프가니스탄의 송유관을 과감히 버리고 가능성 없는 포용적 정부를 요청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강대국의 현실주의적 세계 전략에 약소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감사합니다.